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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쇼크와 플립 클락: JET프로그램 종료 후 일상으로의 복귀

12Apr 2019 Mamta Sachan Kumar

Mamta Sachan Kumar

<필자에 대해서>

싱가포르 출신. 어학 지도 등을 행하는 외국 청년 유치 사업(JET프로그램) 참가자로서 나가사키에 체류. 2017년 8월 2일부터 2018년 7월 30일까지 나가사키현 하사미정의 하사미고등학교와 미나미초등학교에서 ALT(외국어지도조수)로 근무.

 

 

제 달력은 플립 클락입니다. ‘1’부터 ‘31’까지, 버튼을 누르면 숫자판이 다음 장으로 넘어가고, 아래에 있는 작은 다이얼을 돌리면 월 표기도 설정할 수 있어요. 책장 위에 놓인 흑백의 플립 클락은 언제 봐도 멋있습니다. 크게 표시된 숫자 ‘30’과 그 아래에 작은 숫자 ‘7’이 ‘7월 30일’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어요. 좀 더 정확이 말하자면 ‘2017년 7월 30일’이에요. 플립 클락 위에 쌓인 먼지를 보면 알 수 있죠. 집을 떠나 JET프로그램이라는 여행을 시작한 날입니다. 그 날 이후로 플립 클락의 날짜를 넘기지 않았어요.

 

귀국한 지 7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몇 번이고 플립 클락이 시야에 들어와, 이상하게도 저를 쳐다보고 있는 것만 같아서 저 또한 눈길이 갑니다. 어째서 날짜를 바꾸지 않는 걸까 몇 번이나 생각해봤어요. 때로는 플립 클락의 존재를 무시해보기도 하고, 때로는 날짜를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낄 때도 있어요. 그럼에도 이 날짜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은, 여행길에 오르던 순간을 영원히 잊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에요. 이 플립 클락을 볼 때마다 일본으로 출발하던 날을 떠올리며 JET프로그램의 경험과 나가사키 시골에 있는 도자기로 유명한, 매력 넘치는 하사미정에서의 생활도 어제 일처럼 떠올릴 수 있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래도 멈추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하사미정에서 모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우체국에 가서 싱가포르의

 

집주소로 제 자신에게 엽서를 보냈어요. 네 진짜랍니다. 함께 가주었던 직장 동료가 웃음을 띄웠지만, 그녀는 그런 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런 반응을 신경 쓰지 않았지만요. 왜냐하면 그 당시 하사미에서 경험한 일들을 귀국한 자신에게 실감시켜주기 위한 훌륭한 계획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좋은 작전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 작전은 조금 억지스러웠나 봐요.

실제로는 별로 실감이 들지 않았습니다.

 

 

Hai, ima pergi daigaku.”

“Oh! You belajar yah?”

Ī ya, tak belajar. Saya working.”

(일본어, 영어, 말레이어가 섞여있음-옮긴이)

 

세금 환급 등의 수속은 물론, 언어까지 귀국한 뒤로 정리해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귀국 한 지 반년이나 되었지만, 언어의 코드 변환이 아직 어렵습니다. 2,3개의 언어가 뒤섞여, 말이 막힐 때는 잘 사용하지도 못하는 일본어가 튀어나오기도 해요. 싱가포르의 대중교통기관의 서비스는 언제나 정각을 지키기 때문에, 몇 분이라도 기다리게 되면 사람들은 바로 초조해합니다. 조금 부끄럽지만, 작고 파란 연금수첩은 가르치던 학생에게서 받은 편지 속에 끼워져 있습니다. 나가사키에서 가져온 짐 꾸러미가 아직 열지도 않은 채 책상 밑에 있어요. 하사미라는 미지의 세계로 가기 전에, 에센셜 오일, 의료용품 그리고 액세서리를 넣어두었습니다. 만약 어디론가 또 여행을 가게 된다면 당장에라도 떠날 수 있겠죠. 이 짐 꾸러미는 열어서 정리할 수가 없어요. 정리하려고 하면 몸속 깊은 곳에서 메스꺼움(혹은 향수병?)이 치밀어 오릅니다. 국제 클럽 학생들이 SNS로 문화제 공연 영상을 보내주었지만 아직 보지 못했어요. 과거 제가 담당했던 국제 클럽은 지금쯤 후임자가 담당하고 있겠지요. 방 한구석 켜켜이 쌓아놓은 책들처럼 그 동영상은 저의 보물입니다.

 

“그래, 그녀는 정말 예쁘지!”

“나를 잊지 말아 줘…”

 

참고로 하사미를 떠나기 전, 몇 번이나 눈물과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악몽에서 깨어난 적이 있어요. 제 자식과 같은 존재의 학생들과 헤어져, 그들이 저를 잊어버리게 되는 꿈이에요! 그런 날이 금방 찾아올 것을 알고 있기에, 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슬픈 기분이 들었어요. 평소에 밉살스러운 행동을 했던 아이들도 사랑스럽게만 느껴졌습니다. 평소에는 미워했던 아이들이지만 귀국하게 되면 더 이상 만날 수도, 그 아이들의 밉살스러운 행동들마저도 볼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이 쓸쓸하게 느껴졌습니다. 착한 아이들도, 짓궂은 아이들도.

 

JET프로그램은 적응하기까지 1년 정도 걸린다고 해요. 그리고 어떤 일이든 경력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적어도 2년 이상은 그 일을 계속해야 하죠. 그러니 저처럼 1년 만에 귀국한다면 일본에서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었나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네요. 5년 동안 체재한 사람보다는 금방 원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사실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어요.

 

JET프로그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험과 성취감은 반드시 기간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죠.

 

365일간 하사미에서 알찬 생활을 보내면서, 학생들에게 이 드넓은 밭 너머에 있는 세계를 소개하는 것이 제 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학생들에게 마음을 열게 되었습니다.

 

 

하사미정의 사계절

 

 

시간이라는 것은 참 신기하죠. 때로는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지만 플립 클락을 보면 멈춰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사미에서의 일 년은 어느샌가 훌쩍 지나가버리고, 사계의 변화와 함께 제 미래에 도움이 될 많은 경험들을 얻었습니다.

 

현재는 싱가포르에 있는 일본인 학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알차게 보내고 있어요. 1학년 학생 중에 하사미정립 미나미초등학교에서 가르쳤던 쌍둥이와 쏙 빼닮은 여자 아이가 있어요. 가끔 그 아이와 하사미의 쌍둥이가 사실은 세 쌍둥이가 아닐까 하는 즐거운 공상에 젖기도 합니다.

 

상상해보세요. 양 팔을 하늘 높이 크게 뻗고 눈을 살짝 감은 채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맞는 장면을. 하사미에서 있었던 어느 날 오후, 학교에서 퇴근하는 길에 늘어서 있는 나무들이 마치 슬픔에 잠긴 초록색 거인처럼 보였어요. 그때, 여름 더위가 땀으로 등을 적시기 전의 마지막 산들바람인 것을 느꼈습니다.

 

더 이상 잠자리로 둘러싸인 논밭 양쪽에 깔린 울퉁불퉁한 아스팔트 위를 걷지 않아요. 깨끗하게 포장된 도로를 걸어 학교까지 갑니다. 가는 도중에 차를 제어하기 위한 일시정지 표지판이 있지만 그 표지판은 소음공해까지는 제어할 수가 없나 봐요. 오늘 아침 거미줄에 걸려 하사미에서의 일을 떠올리고는 혼자 웃었어요. 하사미는 언제나 거미줄로 가득해서 할로윈에는 따로 장식이 필요 없을 정도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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